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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규정된 성별 이분법의 허황성을 보여주는 퍼포먼서, 드랙킹 아장맨 인터뷰
    FEATURE 2019. 11. 25. 11:05

    공연 준비로 한창 바쁘다며 인터뷰 피드백이 늦어졌다. 어떤 공연인지 물어보니 춘향전에 드랙을 접목시킨 극을 '여성국극'과 함께 준비중이라고  했다. 그녀는 또한 성매매 여성을 위한 활동을 하고 있는데 그들이 어떻게 그런 일을 시작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굉장히 긴 다큐멘터리를 보는 중이고 그것이 꽤나 고통스럽다고 했다. 며칠 전엔 구하라가 자살을 해서 대중을 충격에 빠뜨렸고, 아장맨님의 피드에는 비탄에 빠진 글들로 빼곡해졌다.

     

    다수에 가려 보이지 않지만 마이너리티는 항상 존재한다. 불편한 이들의 목소리를 사회는 외면하기 일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이들을 대변해야 한다. 소수의 목소리를 듣는 것은 다수를 위한 더 성숙한 사회를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일이다. 자신의 온 몸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는 아장맨님을 만났다. 

     

    잘 모르는 사람을 위해 드랙(drag)을 설명해달라.

     

    드랙을 정의할 때 보통은 퀴어퍼레이드라던지 드렉레이스 같은 우리가 잘 아는, 이미지적으로 느낄 수 있는 드렉퀸에 대해 많이 생각한다. 쉽게 대중문화로 설명하면 이번에 새로 나온 브라운아이드걸스의 <원더 우먼> 뮤직비디오에 드랙퀸이 대거 등장한다.

     

    또 <퀸덤>이라는 프로그램의 AOA의 '너나 해' 무대에서 남성, 혹은 남성이라 정의 내릴 수 없는 많은 퀴어 분들이 잘록한 여성복을 입고, 머리를 기르고, 화장하고, 하이힐을 신고 춤을 췄다. 그것도 드랙이라는 말이 있었다.

     

    퀸덤 3화의 AOA 무대 중 치마, 하이힐, 코르셋 등을 입고 있는 드랙 아티스트

    드렉은 자신의 규정된 성별에 관계 없는 행동을 하고 옷을 입는 것이다. 성별 이분법적인 사회, 남성과 여성 사이에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둘을 분리해버리는 사회에 대한 비동의를 표명하는 것이다.

     

    왜냐면 그게 사실이니까. 퀴어도 있고, 남성이나 여성으로 규정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왜 규율에 따라야 하고, 따르지 않으면 어떤 식으로든 폭력을 마주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의식을 발화하는 것이다. 또 단지 말로 하는 게 아니라 보여주는 것이다. 미술 작품으로 라던 지, 소리를 크게 내서 시위를 한다던지, 립싱크를 하던지, 쇼를 구상한다던지, 사진을 찍는다던지. 그렇게 눈에 띄는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한 순간에 나의 의견을 표명하는 거다. 그래서 정치적인 표현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종합 시각 예술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드렉퀸과 드렉킹의 차이는 무엇인가?

     

    ‘퀸’은 여성성을 패러디하는 드랙 퍼포머를 의미한다. 드렉퀸은 사회에서 말하는 여성성을 차용하여 분장을 하고 의상을 만든다. 문학이나 미디어에서는 흔히 ‘여장남자’라고 번역이 되곤 하는데 나는 거기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는다. 드랙에서 중요한 건 수행하는 사람의 성별이 아니기 때문이다.

     

    수행자의 성별을 사실 상관이 없고, 각자가 생각하는 여성이 뭔지에 대한 해석만 존재한다.

     

    사회에서 말하는 우리에게 바라는 여성성을 떠올려보면 얌전해야 하고, 말을 고분고분하게 해야 하고, 경제활동을 하면서 동시에 아이들을 돌보고 동시에 섹시하거나 귀엽거나 청순해야 한다. 그것을 극대화시켜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불편하게도 만들고, 욕망하게도 만들고, 최종적으로 성별이라는 것이 얼마나 허황된 개념인지 생각하게  만드는 게 드렉의 목적이다.

     

    혹은 정말 본인이 바랬던 것을 하기도 한다. 내가 아는 어떤 드렉퀸은 여성인데, 어렸을 때부터 보던 세일러문 같은 변신 만화 속 주인공을 패러디하여 소녀들에게 비춰졌던, 혹은 강요됐던 여성성을 과장해서 표현한다. 

     

    드렉킹은 드렉퀸의 반대다. 사회적 남성성이란 무엇인지를 표현한다. 나의 경우 여러 가지 남성을 표현하는데 남성 예술가를 표현하기도 하고, 나에게 폭력적으로 느껴졌던 남성들, 이를테면 아버지나 예전에 만났던 꼰대 선생님, 대중교통에서 만날 수 있는 위협적인 아저씨를 일부러 연기한다.

     

    나에게 남성성은 공포였다. 그런데 나에게 있어 공포였던 것들을 내가 해석하고 자세히 바라보면 덜 무서워지고, 자유로워지고, 치유되는 부분이 있었다.

     

    사진(좌) @fairyfosha (포샤)

     

    드렉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나는 외국에서 순수 미술과 미술사를 공부했다. 나의 환상과는 달리 공부를 하면 할수록 미술사는 여성 혐오의 집합체였다. 거장이 된 백인 남성 클래식을 보면 사생활이 문란하고, 인간적으로 패배한 인간을 살았음에도 ‘그 사람의 천재성을 위해서 사회가, 소수자가 희생해야 돼.’라는 인식이 있었다. 소아성애자, 강간범 등에게 지나치게 관대했다.

     

    그에 반해서 천재적이었던 여성 작가들은 어린 나이에 가족, 사회 같은 커뮤니티에서 규제가 심해 작품 활동을 못하거나, 위로 올라가는 사회적 승진의 데에 한계를 부딪히고 미쳐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혹은 누군가의 뮤즈로 젊을 때 소비되다가 결국엔 버려지거나. 

     

    또 예술할 때 “이 화제에 대한 너의 퀴어 동양인 여성의 경험은 이렇구나. 흥미롭다”라는 평가를 많이 들었다. 그래서 백인 남성이 아니면 순수미술을 할 수 없구나, 자기 나라에 속해있는 남성이어야 하는 건가, 그게 아니면 언제나 ‘주체’가 아닌 ‘주제’가 되어야 하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됐다.

     

    그래서 7년 간의 유학이 끝나고 한국에 돌아왔을 때 심하게 우울증에 걸렸다. 미술은 하고 싶지 않고, 다른 사람보다 잘 하는 것도 딱히 없어 막막했다. 그때 우울감에 젖어 클럽에 가서 취하면 남자들과 싸우고 웃통을 깠다(웃음).

     

    그런데 그렇다고 내가 그렇게 여성적인 노출을 좋아하는 건 아니었다. 섹시해보이기 위한 혹은 매력을 어필하기 위한 노출은 관심 없지만, 자유롭게 내 맨몸을 드러내면서 남성 연기를 해보고 싶었다. 이 이야기를 했더니 드랙킹을 모집하는 자리를 추천받았고 이를 계기로 지금까지 해오고 있다.

     

    사진 @disposablecamera (김나무)

     

    상의탈의 퍼포먼스의 함의는.

     

    나는 여성유두해방운동의 일환으로 드렉을 시작했다. 목욕탕이나 거울에서 항상 보는 가슴인데도 평소에 되게 야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가슴이 드러나지 않게 자기 자신을 검열했다.

     

    그런데 퍼포먼스 중에는 상의를 벗고 마초적인 행동을 한다. 가슴을 밀치고, 두들긴다. 그러면 곡선과 지방이 있는 여성의 가슴인데도 야해 보이지 않는다. 그러고 보면, 사실은 벗은 상태가 문제가 아니라 보는이들의 차별적인 ‘생각’이 문제였다.

     

     

    많은 이들이 ‘여성 신체는 곡선이 있으니까’ 야하다고 말하는데 사실 가슴만 두고 본다면 우리는 잘 구별할 수 없다. 그냥 지방이 있는 남성 가슴도 있고, 밋밋한 여성 가슴도 있기 때문에 가슴만 따로 보면 우리도, AI도 구별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여성의 유두는 야한 것이고 노출되면 안 된다. 왜? 지방이 있어서? 모유가 나와서? 제대로 답변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인스타그램의 경우 강력한 제약, 그리고 어떤 유두는 괜찮다는 그들끼리의 약속이 있다. 예를 들어 모유수유하고 있는 가슴, 유방절제 수술받은 가슴은 드러나도 괜찮다. 하지만 그게 여성의 가슴이 아닌 것은 아니다.

     

    이런 제약도 깊게 생각해봐야 한다. ‘법을 어기니까 안돼'라는 것을 떠나서, 왜 내가 가슴이 드러나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안된다고 생각했는지. 언제 내 몸이 노출됐을 때 위험하다고 느꼈는지. 24시간 브래지어를 하고 있는 사람은 유방암 확률이 80% 올라가는데도 왜 꼭 브래지어를 해야 한다고 느끼는지.

     

    여성은 사회에서 끝없이 평가를 받는다. 회사에서도 화장하지 않는 것으로 압박이 들어오고 웃지 않거나 화난 표정을 짓고 있으면, 남자는 카리스마 있는 것인데 여자는 뭔가 문제가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런 것이 비합리하다는 생각을 한 이후에는 규제를 모두 다 벗기 시작했다. 요즘엔 화장도 잘 안 한다.

     

    퍼포먼스를 하면서 느낀 것은.

     

    노브라를 무대 위에서, 안전할 때만 할 수 있는 거니까 그 격차가 항상 크게 다가온다. 무대에서는 해방감을 느끼다가 무대 바깥으로 나오면 초라하게 느껴진다. 사회에서는 노브라면 ‘강간해도 싼 여자, 사회 규율에 반기를 드는 여자’라는 라벨링을 당한다.

     

    또 클럽에서 공연을 할 때 술에 취한 사람에게서 터치가 들어오기도 한다. ‘노출이 드러난 여성이면 만져도 돼.’ ‘나이가 든 여성이면 만져도 돼.’ ‘성적 매력이 없다고 합의된 인체는 마음껏 터치해도 돼.’ 같은 인식이 반영된 것이다.

     

    이런 일들은 굉장히 짧은 시간 안에 일어난다. 무대에서 자유롭게 춤을 추고 벗다가, 무대에서 내려오는 순간 마음껏 터치가 들어온다. 혹은 가슴을 과하게 쳐다보며 ‘내가 이렇게까지 가까이 봐도 안 가리고 배기겠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관객도 있다.

     

    그래서 무대의 퍼포머와 관객 모두 항상 안전한 상황에 있어야 하고, 그래야 퍼포머도 백프로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진 @robertmichearadams

     

    남녀의 성별을 떠나서 내가 나일 수 있게 해준 힘은 무엇이었나?

     

    자기 객관화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어떤 면에서 소수자이고, 어떤 면에서 혜택을 받아왔는지 계속해서 생각해야 한다. 그래야 어느 부분에서 내가 함구해야 하고, 어느 부분에서 입을 열었을 때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는지를 알 수 있고, 조화로울 수 있다.

     

     

     

     

    에디터 Yeonsung Lee

    인터뷰 주최 Opium 블로그

    드랙킹 아장맨 트위터 | 인스타그램

     

     


     

    여성국극x드랙

    아장맨님이 연출에 참여하고 출연하는, 춘향전에 드랙을 접목시킨 극이 12월 7일과 8일 양일 정동마루에서 저녁 6시에 진행됩니다. 트위터 계정에서 자세한 내용을 확인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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